[시사종합신문]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하게 마음 내려놓을 자리가 필요하다면 이곳을 권하고 싶다. 그야 말로 인적이 끊어진 듯 한 이곳은 혹여 이곳의 주인(?)과 마주쳐도 왜 왔느냐고 눈빛으로도 물어 보지 않기에 적당한 불친절함이 최대의 친절함이라는 것을 절실히 알게 하는 곳이다. 너도 싫고 나 자신도 귀찮고, 주변의 그들도 버거운 날에 나를 되찾아 올 수 있는 금정암에는 덤으로 화엄사를 가지고 있다.

아주 작은 암자지만 잴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삶의 고통이라는 녀석을 안고 방황하는 마음의 넓이는 우주를 덮을 만큼 큰 것들을 내려놓아도 용량초과라고 투덜거리지 않는 참으로 도량이 넓은 암자다.

소담하고 아름다운 화엄사를 품안에 안고 있는 금정암(金井庵)은 전남 구례의 지리산(행정적으로 지리산은 6개의 시군이 관여됨)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 주소지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다. 종파는 불교 조계종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부속 암자다.

금정암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보면 그를 뒷받침 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 마당에 서서 보면 화엄사 각황전이 보이고 4사자 3층 석탑, 대웅전을 비롯해 화엄사 전경을 한 눈에 훤히 볼 수 있으며, 산 능선의 매력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물론 움직일 필요도 없이 한 곳에 서서 볼 수 있음에 더욱 좋다. 그래서 금정암에는 화엄사가 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그뿐이랴, 바둑에 훈수의 묘미 또한 느낄 수 있다. 훈수의 묘미는 관음(觀音)의 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한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면 대책방안의 수가 보인다는 데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의 일이 일어나도 잠시 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발 뒤로 머물러 생각하면 나쁜 상황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럴 여유가 없어 더 큰 덩어리로 얽히게 하곤 한다. 나도 제외일수는 아니다. 그럴 때 금정암을 찾으면 그 훈수의 묘미를 터득하게 되고 삶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다.

시각적으로도 가슴을 확 트이게 하기도 한다. 누구의 간섭과 그 누구를 위한 겉치레도 필요 없고, 신경 쓰이게 하는 이 없으며 구속 또한 없다.

금정암 가는 길

금정암 가는 길 금정암을 찾아가는 길은 도보명상 길로 명품이다. 화엄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거진 숲길을 따라 적당히 걸을만한 거리로 두 군데 길이 있다.

한 곳은 화엄사 일주문 맞은편 찻집 앞으로 숲속을 거니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 주는 피톤치드가 많이 배출되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가끔은 승용차가 지나가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길이 준비되어있다. 화엄사 일주문 맞은편에 있는 찻집과 다리사이에 등산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예쁜 길이 있다. 두 번째 길을 최우수상품(?)으로 추천하고 싶다.

금정암의 절집들 옛날부터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금정암 중창 이전에 지금 법당 오른편에 산왕대신(山王大神)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한 비구니가 백일기도를 하여 소원성취를 이뤘다고 한다. 그 이후 설응선사(雪凝禪師)는 명종12년(1562)에 금정암을 창건하였다. 이와 같은 설화가 구전되어 노골적으로 내놓고 소원성취 기도를 하기에는 미안했던지 남들이 볼세라 조심스럽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1997년에 소담한 산왕단이 중건되었다. 칠성전과 요사채((寮舍:스님들이 거처하는 집)는 고종(재위: 1863∼1907)때 세워진 건물이다.

작은 암자지만 나름대로 많은 의미와 역사를 안고 있는 금정암은 화엄사에 속해 있던 여러 암자 중 구층암(九層庵), 지장암(地藏庵)과 함께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1년 불이 나서 건물이 불에 탔고, 1999년 10월에 대웅전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 외에 원통전(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사찰의 주된 전각일 때 붙이는 이름으로 사찰 내의 1개 전각일 때는 관음전이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한다.)과 요사채, 심검당(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선실(禪室)이나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에 붙이는 이름), 적묵당(寂默堂: 참선하는 승려들 중 초심자가 수행(修行)하던 곳)을 갖추고 있다.

금정암의 원통전은 본래 고종 때 세운 칠성전을 수리한 건물로 내부에 관세음보살(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보살)을 모셔 두었다.

현재 심검당과 적묵당은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여 공부와 휴식장소로 쓰이고 있다. 각심(覺心)스님께서 1993년에 후원요사중건, 1998년 법당중건 및 요사를 중건 하였다. 종교적 가치, 건축양식의 역사적 가치, 건축공법 등 운운하기에는 금정암이 주는 느낌에 압도되어 그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실례를 범하는 것 같다.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기 편안한 집, 사람이 살기 좋은 집이다. 거기다가 불교 건축물이니 만큼 어지러운 마음자리까지 녹아들게 하는 곳 이여야 하며 자비와 보시가 곁들여져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금정암이 주는 느낌은 최고라 할 수 있다.

황금우물

황금우물 언제 올지 모르는 집나간 딸이 돌아왔을 때 어색하지 않게 그 모든 것을 잠재우고“항상 너를 기다렸단다. 어서오너라, 이 엄마는 널 다 이해한단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못 본 척, 안본 척 하면서 속 썩인 자식에 대한 말없는 교훈과 배려심이 구석구석에 가득 묻어나 있다. 뒷받침이라도 하듯 해우소는 먼 길 오는 딸에게“ 너 만을 위한 화장실이란다.”라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미안해서 슬그머니 들어오는 딸이 눈치 안보고 편하게 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깔끔함은 기본이며 화장실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 해우소를 옆으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발 보폭을 배려한 편안한 계단으로 발걸음 동작에 대한 불편함을 최대한 줄였고, 적당한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올려진 기와들과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입구에 있는 소담한 채마밭은 더할 나위 없는 어울림이다. 채마밭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곳은 아마도 금정암 채마밭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금정암에는 하루가 바뀌는 시간인 자시(밤11시~ 새벽1시)에 물을 마시면 기운이 오르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황금우물이 있다.

금정암은 비구니스님들이 살고 계신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곳에 가보면 비구니스님이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큰 스님 각심스님, 주지 혜광스님, 그리고 다른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외국에서 오신 스님이 가끔 눈에 띄기도 한다. 돌아온 탕아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날에나 삶이 버겁고 지쳐 위로 받고 싶은 날, 그도 아니면 그냥 편안하고 예쁜 집에 놀러간다는 기분으로 금정암을 들러 보시면 덤으로 얻어오는 것이 의외로 많아 그날은 아마도 일기장에 횡재한 날이라고 기록하게 될 것이다. 금정암이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 질 수 있는 것은 큰스님 각심 스님의 노고가 숨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슬그머니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