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비와 여우꼬리
오승택 기자입력 : 2016. 09. 08(목) 10:41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젊은 선비가 해가 저물어 묵을 곳을 찾아다. 뜻밖에 산중에 불빛이 있어 가보니 큰 기와집이 나온다. 문을 두드리니 낭자가 등불을 들고 나와 문을 열어준다.
“길 가는 과객인데, 하루 밤 묵어 갈 수 있는지요?” “누추함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쉬어가시지요” 낭자는 앞장서 방으로 안내한다. 잠시후 저녁상을 차려온다.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밥에 정갈스런 반찬들이다. “홀로 사는 까닭에 찬이 변변치 않사오나 요기를 하시지요” 등잔불 너머로 건네오는 맑은 목소리와 낭자의 얌전한 자태는 젊은 선비의 춘심을 뒤흔들기에 충분하였다. “어찌된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낭자 혼자 이렇게 외진 곳에 살다니, 내 과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낭자에게 청혼을 하리다”
아무런 말없이 살포시 웃고만 있던 낭자는 식사를 마친 상을 들고 나가는데, 고운 한복의 뒷모습 역시 아름다워 젊은 선비는 넋이 나간 듯 바라본다. 그런데 낭자의 치마 사이로 뭔가 보인다. 자세히 바라보던 젊은 선비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진다. 아무리 고개를 흔들고 봐도 그것은 여우 꼬리였던 것이다. 갑자기 속이 느글거리는 한편,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난다.
젊은 선비가 낭자의 외모에 반해 청혼할 마음이 들었지만, 낭자의 치마 사이로 삐져 나온 여우꼬리를 보고서는 만정이 달아남은 물론 식은 땀을 흘리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도망칠까를 걱정한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흐르는 듯한 목소리에 고운 자태에 매료된 젊은 선비가, 낭자의 치마 밑으로 드러난 실체에 혼비백산한 이야기. 과연 아름다운 낭자의 탈을 쓰고 아름다운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춘 여우의 속셈은 무엇이었던가? 어린 시절에 자주 듣던 옛날 이야기인지라 답은 생략한다.
이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외진 길을 걷다 뱀을 보는 경우의 예가 있다. 홀로 외진 곳을 걷다 뱀을 마주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심장은 마구 뛰고, 심한 경우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뱀은 온 데 간 데 없고 낡은 새끼줄이 하나 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공포심은 사라지고 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처럼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춘 여우의 속셈을 모르고,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등 참모습이 아닌 허상(虛像)에 속아 쓴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 경우들이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를 1년 여 남겨두고 속 마음은 어떤가 모르지만, 미소를 띠며 정답게 손을 움켜쥐는 정치인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난 1995년 지자제 실시 이후 선거철이면 민원을 빙자(?)하여 부지런히 주민을 찾아다니다가 시간이 지나면 뜸해지다가 선거철이 다가오면 다시 다가오는 ‘봇짐 내어주면서 하룻밤 더 묵으라’는 속과 겉이 다른 속담과 같은 모습을 몇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 문화는 수치의 문화인 것이다. 사회의 성원이 서로간에 수치를 아는 사회, 서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유교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측면이다”면서 우리 사회의 전통적 미덕을 '수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수치를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허상(虛像)에 속아 쓴 웃음’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새끼토막을 새끼토막으로 보아야만 한다. 필요없는 식은 땀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길 가는 과객인데, 하루 밤 묵어 갈 수 있는지요?” “누추함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쉬어가시지요” 낭자는 앞장서 방으로 안내한다. 잠시후 저녁상을 차려온다.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밥에 정갈스런 반찬들이다. “홀로 사는 까닭에 찬이 변변치 않사오나 요기를 하시지요” 등잔불 너머로 건네오는 맑은 목소리와 낭자의 얌전한 자태는 젊은 선비의 춘심을 뒤흔들기에 충분하였다. “어찌된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낭자 혼자 이렇게 외진 곳에 살다니, 내 과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낭자에게 청혼을 하리다”
아무런 말없이 살포시 웃고만 있던 낭자는 식사를 마친 상을 들고 나가는데, 고운 한복의 뒷모습 역시 아름다워 젊은 선비는 넋이 나간 듯 바라본다. 그런데 낭자의 치마 사이로 뭔가 보인다. 자세히 바라보던 젊은 선비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진다. 아무리 고개를 흔들고 봐도 그것은 여우 꼬리였던 것이다. 갑자기 속이 느글거리는 한편,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난다.
젊은 선비가 낭자의 외모에 반해 청혼할 마음이 들었지만, 낭자의 치마 사이로 삐져 나온 여우꼬리를 보고서는 만정이 달아남은 물론 식은 땀을 흘리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도망칠까를 걱정한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흐르는 듯한 목소리에 고운 자태에 매료된 젊은 선비가, 낭자의 치마 밑으로 드러난 실체에 혼비백산한 이야기. 과연 아름다운 낭자의 탈을 쓰고 아름다운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춘 여우의 속셈은 무엇이었던가? 어린 시절에 자주 듣던 옛날 이야기인지라 답은 생략한다.
이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외진 길을 걷다 뱀을 보는 경우의 예가 있다. 홀로 외진 곳을 걷다 뱀을 마주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심장은 마구 뛰고, 심한 경우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뱀은 온 데 간 데 없고 낡은 새끼줄이 하나 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공포심은 사라지고 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처럼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치마 속에 꼬리를 감춘 여우의 속셈을 모르고,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등 참모습이 아닌 허상(虛像)에 속아 쓴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 경우들이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를 1년 여 남겨두고 속 마음은 어떤가 모르지만, 미소를 띠며 정답게 손을 움켜쥐는 정치인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난 1995년 지자제 실시 이후 선거철이면 민원을 빙자(?)하여 부지런히 주민을 찾아다니다가 시간이 지나면 뜸해지다가 선거철이 다가오면 다시 다가오는 ‘봇짐 내어주면서 하룻밤 더 묵으라’는 속과 겉이 다른 속담과 같은 모습을 몇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 문화는 수치의 문화인 것이다. 사회의 성원이 서로간에 수치를 아는 사회, 서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유교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측면이다”면서 우리 사회의 전통적 미덕을 '수치'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수치를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허상(虛像)에 속아 쓴 웃음’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새끼토막을 새끼토막으로 보아야만 한다. 필요없는 식은 땀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