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발상지는 하나다
고창군청 상하수도사업소 관리팀장 전민중
시사종합신문입력 : 2022. 01. 19(수) 09:40
고창군청 상하수도사업소 관리팀장 전민중
[시사종합신문] 아직까지도 몇몇 자치단체에서는 자기 지역을 동학농민혁명(이하 ’혁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발상지(發祥地)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발상지는 역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일이나 현상이 처음 나타난 장소를 의미한다.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발상지는 둘, 셋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혁명의 시작인 사건 또한 하나여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혁명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 갖춰야 할 기본 자격은 무엇일까. 물론 이것 또한 발상지 뜻에서 ’큰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큰 가치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높은 시대정신이다. 혁명에 있어 시대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는 절대적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다. 어느 지역주민, 어떤 종교단체가 억압과 핍박을 받을 때 본능적인 항거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나 타지역민, 타인의 억울함과 아픔을 내 일 같이 생각하여 대항하는 것은 공동체 상생 정신이 내재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실제 고창 무장기포후 지역주민 4,000여명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과 함께 무장읍성과 고창읍성이 아닌 고부성을 첫 번째로 공격한다.

둘째, 정체성 선언이다. 모임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선언이 그만큼 중요하다. 난제 해결을 위한 대안과 정체성을 논리 정연하게 대외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몰려들었다 하여 한 순간에 모임의 정체성이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고창 무장포고문에는 혁명의 성격과 의의가 함축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셋째, 완전한 독립이다. 혁명은 숙명적으로 현 체제에 반기를 든 비합법적 저항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저항이 일어나면 조선 조정의 회유와 설득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는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설득 당했다는 것은 현 기득권 체제의 규범을 준수한 결과가 되어 결론적으로 혁명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 보은집회와 고부봉기는 조선 정부의 회유와 설득에 해산해 버린다.

일부 사람들은 보은집회 또는 고부봉기가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어 발상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초는 단초로서 역사적 의미를 두어야 한다.

이들 사건보다 앞서 일어난 선운사 미륵석불비기 탈취사건이 동학도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고 조선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발현시켜 뒤 이은 사건들의 단초를 제공했다 하여 혁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어떤 사건이 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기준은 연속성과 함께 이 사건이 포함될 경우 혁명 참여자들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수 있느냐 아니면 격하되는냐에 달려 있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서도 혁명의 시작점으로 1894년 3월 무장기포를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반적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혁명의 발상지는 무장기포지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에는 소모적 발상지 논쟁에서 벗어나 인류의 상생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방향타로서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이 확실히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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