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된다’ 고로 ‘존재’한다 복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
서귀포시 성산읍 주무관 한정용
시사종합신문입력 : 2024. 06. 02(일) 22:04
서귀포시 성산읍 주무관 한정용
[시사종합신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 말은 실존주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주장한 유명한 철학적 명제이다. 사유(思惟)는 존재를 증명하는 기본단위가 되고, 이에 대한 검증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나 자신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타인, 집단, 조직, 사회로 그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여 간다. 나의 실존을 확인 함에 따라 타인의 실존을 인식하는 연결의 고리는 개인을 중심 수립된 사회를 형성하였고 이는 근현대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변화는 이제 생각의 주체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AI의 등장은 생각, 사유의 주체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 주장하기에 사회는 물리적, 심인적으로 너무 확장되었다.

개인의 생각을 통한 존재 확인의 욕구는 너무나 거대해진 타인들이라는 벽에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우리는 계속해서 소통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을 멈춰야 하는가?? 생각을 멈추고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인가?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제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한다’가 아닌 생각‘된다’의 명제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생각‘되는’때 우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가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제 그것의 존재를 실존한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처리하는 서류 한 장, 계획서 하나, 신청서 한 장에 우리가 생각을 담아줄 때 그것은 드디어 실존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누군가 받는 결정문의 글자, 통지서의 문구, 문자메시지에 텍스트 그것에 그들이 생각을 담아줄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에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삶의 질과 복지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를 존재하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나 조차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있는 것에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드는 이날. 그들이 생각‘되고’ 우리가 생각‘되는’ 사회가 되어야만 잊혀져 버린 그들이 ‘문제’로 나타나는 그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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